뇌사 이외에 심정지 후에도 장기기증이 가능해진다,DCD 제도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은 오랫동안 ‘뇌사자’에게만 허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2025년 10월에 발표한 ‘제1차 장기등 기증 및 이식 종합계획(2026~2030)’은 그 오랜 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연명의료 중단 후 심정지로 사망한 사람(DCD, Donation after Circulatory Death)도 장기기증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살아 있을 때 기증 의사를 밝혔던 사람”이 심장이 멈춘 상태로 사망하더라도, 가족의 동의만 있으면 장기를 이식에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 뇌사 상태로만 제한되던 기증의 문턱이 완화되면서, 장기이식 대기자의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훨씬 커질 전망입니다.
제도 변화의 핵심
이번 개편의 중심은 바로 ‘DCD 제도’입니다. 뇌사가 아닌, 연명의료를 중단한 후 심장이 멈춘 사람의 장기를 기증받는 방식이죠.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등 의료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절차로 자리 잡았으며, 전체 장기기증의 30~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의료윤리, 법적 절차, 기술적 기준을 단계적으로 마련할 계획입니다. 심정지 후 일정 시간을 두고 사망을 확인한 뒤, 장기 손상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기증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려면 ‘장기이식법’과 ‘연명의료결정법’ 등 관련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법에는 심정지 사망자의 장기 적출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움직인다
이번 종합계획은 기증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 외에도, 기증 희망 등록 절차를 더 쉽고 간편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나 일부 민간기관을 통해서만 등록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주민센터, 운전면허 발급처, 병원 등 일상생활과 가까운 곳에서도 등록이 가능하도록 바뀔 예정입니다. 정부는 2025년 기준 462개소인 등록기관을 2030년까지 약 90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더불어 장기기증자와 유가족을 위한 예우도 대폭 강화됩니다. 기증자를 위한 추모공간 조성, 장제비 지원 확대, 감사패 증정 및 국가적인 추모 행사 등 정서적 지원이 늘어납니다. 이는 그동안 ‘헌신’으로만 여겨지던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기대와 남은 과제
현재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3만 6천 명이 넘지만, 실제로 이식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 중 상당수의 환자들이 이식을 기다리다 안타깝게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심정지 후 기증이 허용된다면, 이식 가능한 장기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생명을 살릴 기회가 확대될 것입니다. 영국의 경우 DCD 도입 후 5년 만에 장기이식 건수가 60%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다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습니다.
심정지 후 장기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만큼, 이를 보존하기 위한 의료 기술적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인식 개선이 중요합니다. 본인이 생전에 동의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여전히 기증이 무산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기증 문화가 자동으로 확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사회 전체가 ‘기증은 생명을 이어주는 소중한 선택’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시켜 나가야 할 때입니다.
마무리하며
장기이식은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라,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게 ‘두 번째 기회’를 선물하는 이타적인 선택입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내 장기이식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첫걸음이며, ‘심정지 장기기증’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다면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제도의 윤리적·기술적 보완이 충분히 이루어져서 ‘장기기증’이 뇌사자의 몫을 넘어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생명 나눔의 문화로 확장되기를 기대합니다.